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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노트

포르투, 오래된 것의 다정함에 대하여

by 세라H 2025. 4. 23.

 

포르투, 오래된 것의 다정함에 대하여
포르투, 오래된 것의 다정함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세라에요.
우리는 때때로 이런 말을 하곤 해요.


“조금 낡았지만 정이 간다.”
“시간이 오래된 것엔 특별한 온기가 있다.”

그런 문장들이 현실이 되는 도시가 있다면,
포르투(Porto)가 그 중 하나일 거예요.

 

리스본처럼 세련되진 않았고,
파리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포르투는 천천히 보면 예쁘고, 오래 머물면 더 깊어지는 도시예요.


저는 이곳에서 혼자 여행자의 속도
다정하고 조용한 며칠을 보냈어요.


붉은 지붕과 푸른 타일이 만나는 도시

처음 도착했을 땐
도시 전체가 회색빛 석조 건물과 붉은 지붕으로 채워져 있었어요.
낡은 듯 보였지만,
그 사이사이 박혀 있는 푸른 아줄레주 타일
마치 말을 걸 듯 반짝이고 있었죠.

 

이곳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도시였어요.
이름 모를 골목에서 마주친 벽화,
도우루 강을 따라 이어진 돌길,
비 오는 오후에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바라보던 풍경…

 

포르투는 어떤 관광 포인트보다 ‘느낌’이 먼저 오는 도시예요.


그 느낌은 오래된 것에서 오는 따뜻함,
그리고 낯선 도시인데도 어쩐지 익숙한 감정이에요.


리벨로 다리 위에서 만난, 내 안의 조용한 여백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리벨로 다리(Ponte de Dom Luís I)였어요.


낮에는 강 위를 가르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천천히 늘어나고,
해질 무렵이면
다리 위에는 혼자 선 사람들의 고요한 침묵이 흐르죠.

저도 그 중 하나였어요.


해가 강물 위로 지고,
도시가 붉은빛으로 물드는 풍경을 보면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시간이 이렇게 충만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요.

 

혼자여서 좋았고,
고요해서 더 깊이 남았던 시간.


그 다리 위에서 저는
‘멋진 풍경’보다 ‘내 감정’을 더 오래 바라봤던 것 같아요.


시장에서, 서점에서, 커피 한 잔에서 만난 사람들

포르투는
사람들의 말투조차 부드럽고 리듬감 있어요.
아침 일찍 볼량시장(Mercado do Bolhão)을 걸을 땐
“올라(Olá)!”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상인들의 표정이
도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줬어요.

 

또 한 곳,
절대 잊지 못할 공간은 르루 서점(Livraria Lello)이에요.
해리포터의 배경이 됐다는 이유로 유명해졌지만,
그 안의 나선 계단과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감정의 공간이었어요.

 

조용히 책을 고르던 순간,
내가 어떤 도시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낯설고도 뭉클했어요.


여행 중 마주친 작은 감정들이
책갈피처럼 마음에 끼워지는 순간들.


혼자 걷는 속도를 배려해주는 도시

포르투는 혼자 여행하기에 부담 없는 도시예요.
언덕이 조금 많지만,
그 언덕마저도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해요.

 

낮엔 강을 따라 걷고,
오후엔 작은 성당 안에 잠깐 앉아 있고,
해질 무렵엔 벽돌 계단 위에 앉아
다리 건너편을 바라보는 시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충분히 다정했던 하루.
그건 어느 고급 호텔도, 유명한 레스토랑도 줄 수 없는 감정이에요.


포르투가 내게 남긴 말 – “이대로도 괜찮아”

여행을 하다 보면
의외로 어떤 도시에는 ‘깨달음’이 아니라 ‘인정’이 남아요.

포르투는 그런 도시였어요.


더 대단한 걸 보지 않아도,
더 유명한 걸 찍지 않아도,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

 

그 말은 마치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말 같았어요.

그리고 그게 바로

혼자 여행의 가장 큰 의미였어요.


다른 어디보다 내가 나에게 더 잘해주는 시간.
그걸 포르투에서 배웠어요.


오래된 도시의 온도는 오래 기억된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알람을 맞추고,
밀린 이메일을 정리하며
가끔은 ‘내가 정말 포르투에 다녀왔던가?’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저녁
햇살이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오는 순간,
혹은 조용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오후가 찾아오면
그 도시의 공기가, 빛의 결이, 거리의 냄새가
아주 천천히 다시 떠오르곤 해요.

 

포르투는 그런 도시예요.
잊히지 않는 도시,
다정한 마음이 남는 도시,
그리고 여행 이후에도 삶에 오래 스며드는 도시.

 

저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따뜻한 타일처럼 남아 있는 도시예요.